칼럼을 시작하며 본문
두 사람의 선각자 이야기로 시작을 하겠다. 1980년대 언론홍보 실무자로 일하던 시절, 그를 알게 되고 내가 느낀 감정은 ‘가슴 뛰는 신세계’였다. 에드워드 버네이즈(Edward L. Bernays)는 PR을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과학적인 설득(Scientific Persuasion)’이라고 정의했다. 사람, 동의, 과학, 설득. 그는 성공적인 PR프로젝트를 위해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넓은 생각(Big Think)’과 ‘여론을 끌어들일 수 있는 세밀하고 꼼꼼한 준비와 방법(Crystallizing)’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빅 싱크와 크리스털라이징. 버네이즈가 제시한 멋진 신세계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 당시 우리는 보도자료와 기자인맥이라는 2개의 무기만 들고 PR전선에 나서던 기형적이고 후진적인 PR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버네이즈가 PR을 이용해 이룬 가시적 성과는 참으로 놀랍다. 인간의 심리를 마케팅에 접목하는 ‘기술’을 통해 베이컨을 유행시키고, 아이보리 비누가 욕실마다 놓이게 했고, 집집마다 서재를 만들어 책을 꽂도록 유도했다. 여성 흡연의 대확산에도 그의 ‘기술’이 작용했다. 정치·외교와 PR의 만남은 훨씬 큰 변화를 이끌었다. 1950년대 과테말라 사회주의 정권으로부터 위협을 받던 바나나 수입회사 유나이티드 푸르츠를 도와 정권 붕괴에 일조했을 정도다.
나는 바네이즈의 PR기술을 찬양하고 답습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인 설득방법, 설득의 기술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공감해 보자는 것이다. 설득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헬스, 과학, 위험 등 다양한 분야와 함께 발전하면서 깊이 있는 이론과 전략으로 발전했고, 실생활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꼭 기업을 하고 전쟁을 하는 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관계, 인생의 선택에서도 힘을 발휘하는 기술이 되었다.
버네이즈의 이론이 기원했고, 온갖 분야의 수많은 연구자들이 아직도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2400년쯤 전의 이 유명한 철학자는 <수사학>이라는 책을 썼다.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로 이어지는 논리의 상승은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문제들을 다룰 때에도 해법의 메카니즘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 영감을 얻은 설득의 이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까지 애용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체계는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학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힘들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쉽게 변하지 않는 인간성에 대한 그의 통찰이 심오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수백년에 걸쳐 검증된 이론을 토대로 발전된 인지심리학의 이론은 현재도 전략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틀을 제공하고 있다.
21세기, 커뮤니케이션의 전략과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영향력 있는 미디어 매체 활용 위주로 진행되던 전통방식은 이제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요즘은 이름만 나열해도 다양하다. 브랜드 저널리즘(brand journalism), 스토리텔링(storytelling)과 스토리두잉(storydoing),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트리플미디어(owned+earned+paid media) 등 새로운 매체, 새로운 공중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플랫폼 등이 점점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 빅 데이터, 증강현실, 사물 인터넷 등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PR회사, 광고회사, 마케팅 회사들의 영역도 급변하고 있다. 당연히 서로의 영역도 모호해지면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새로운 채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자, 그렇다면 당장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해야하는 조직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급변하는 상황에서, 실무자들이 제대로 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넘쳐나는 채널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흘러가는대로 흘러가야만 하는 걸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 구분이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어떻게 의뢰인의 명성을 관리하고 위기에 대처할 수 있을까?
기업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한 이같은 질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현장 실무자들은 물론이고, 학자들이나 연구자들,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현명한 해답을 찾기 위해 지금도 땀 흘리고 있다.
현장의 기획자들이 수많은 캠페인을 기획하고 제안하고 실행하지만, 전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완성도가 떨어지고 효과가 미흡한 경우가 허다하다. 실무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전술이 중요하다. 그러나 전술에 집중하다 보면 전략을 놓치기 십상이다. 좋은 전략. 많이 공부해야 겨우 알 수 있으니 현장의 실무자들에게 이론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다 보니 공중을 상대로 한 캠페인이 미흡하여 공허하거나 근본적 실패로 결론나기도 한다.
다른 쪽에서 연구자들의 성과물을 보아도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론에 능하고 전략적인 프레임 제시나 구축은 탁월해 보이지만, 전술적인 전개에서 현실성이 없어 실현가능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론가와 실무자의 갭은 어쩔 수 없는 현실. 그래서 이론과 실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여러 케이스 스터디들이 행해지고, 그 결과가 공유될 필요가 있다.
40년에 가까운 시간을 PR 현장에서 보내온 나는 박사과정을 통해 이론적 방법론을 익혔고, 10년 가까이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이론과 실무의 조화를 보여주려고 노력해 왔다. 국내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에이전시 중 하나인 ‘피알원’의 실무단의 노력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따끈따끈한 사례들을 제공하고 있다. 기존의 연구결과로 수없이 되풀이되어온 해외사례들을 넘어서 21세기, 지금, 바로 이곳, 세계에서 가장 첨예하게 미디어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장 케이스를 풀어갈 계획이다.
<문간에 발 들여놓기>라는 전략 하나를 예시로 든다. 제대로 하기만 한다면 아주 작은 시도도 큰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메시지를 구성할 때 핵심내용을 언제 제시하느냐에 따라 설득효과가 달라진다. 초두효과(첫인상 효과)는 첫 부분에 오는 내용이 가장 설득력이 크다고 보는 것이고, 최신효과는 가장 최근에 본 것이 효과적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상대방에게 작은 요청에 응하게 한 후, 그보다 더 큰 목표 요청을 들이밀어 그것도 승낙하게 만드는 방식이 바로 ‘문간에 발 들여놓기’ 전략이다. 이 때 핵심적 내용이 ‘개입(involvement)’이다. 아무리 작은 요청일지라도 일단 동의한 뒤에는 이전보다 그 문제에 더 많이 개입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후의 요청에도 동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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