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악덕기업에서 최고의 멋진 기업으로 변신 본문
석유회사 로얄더치쉘(Royal Dutch Shel)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북해유전 원유 채굴에 사용했던 시설물 폐기를 놓고 그린피스와 충돌해 ‘북해 원유채굴 시설물 폐기 사건’을 겪었다. 또한 환경파괴 및 지역주민 학살 루머로 인한 ‘나이지리아 오고니 사태’ 등으로 최대 위기를 겪었다. 1995년에는 세계 10대 악덕 기업 중 1위에 오르는 등 한때 기업 이미지가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시나리오 경영의 맹주였던 쉘
1995년 미국의 다국적 모니터 단체가 세계 10대 악덕 기업을 발표하면서 쉘을 1위로 뽑았다. 그해 쉘은 그린피스에게 가장 집중적으로 공격받은 기업이었다. 쉘은 회사 이름처럼 1833년 영국 런던에서 조개껍질을 판매하는 조그만 상점으로 출발해 170년 동안 성장하면서 글로벌화된 석유 관련 세계 초일류 기업이다.
쉘의 경영기법은 시나리오 경영의 교과서가 될 정도로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 대한 전략적 접근으로 체계적인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던 회사였다. 이러한 쉘의 이미지 추락은 세계 경제계 및 석유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95년은 인터넷 대중화의 원년으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대해 세계의 관심이 고조됐던 시점이었다. 인터넷은 특히 그린피스와 같은 NGO 단체들의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해 그린피스 및 세계 NGO들이 가장 주목한 기업이 바로 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나리오 경영의 맹주 쉘은, 인터넷 위력에 대한 인식 부족 및 대처 능력 부재로 결국 씻기 힘든 오점을 남겼다. 쉘을 괴롭힌 신호탄은 북해에서 나타났고, 카운터펀치가 돼버린 결정타는 나이지리아 오고니 지역에서 발생됐다. 하지만 두 사건을 통해 오늘날 쉘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북해 원유 채굴 시설물 폐기 사건
1995년 6월, 쉘은 그린피스의 도전을 받았다. 쉘이 북해유전 원유채굴에 사용했던 높이 140m, 무게 15,000톤의 초대형 원유채굴 시설물을 6월 21일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 북해 한가운데에 가라앉히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그린피스가 저지를 선언한 것이다. 그린피스는 약 130톤가량의 유독 물질이 그대로 남아 있어 해양오염이 심각해질 것을 경고하면서 원유채굴 시설물을 육지에 끌어올려 처리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쉘은 그린피스의 주장을 무시했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쉘은 철거 방법으로 네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그중 작업의 안전성·경제적 비용·환경오염 등을 검토한 결과 가장 뛰어나다고 판단한 것이 심해에 폐기하는 방법이었다. 그 방법은 석유업계 전문가들은 물론 존 메이저 총리를 위시한 영국 정부도 지지했다.
하지만 그린피스는 가장 무책임한 결정으로 판단하고 대대적인 폐기 반대 운동을 펼쳤다. 환경 운동가들은 시설물 점거 및 예인 작업 방해 활동을 펼쳤고, 쉘 불매운동을 선언하며 인터넷을 통해 활동 상황을 사진과 함께 게시했다. 쉘의 해양환경 오염의 구체적 내용들을 전 세계에 알린 것이다. 평소 그린피스 홈페이지는 전 세계 언론들이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쉘 불매운동은 곧바로 세계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 유럽 각국의 환경단체 및 소비자 단체들이 참여하고, 녹색당과 같은 정치 집단들과 종교 집단까지 동조했다.
문제가 확대되자 쉘의 노동조합마저 회사를 비난하는 성명을 내기에 이르렀다. 독일의 콜 총리는 G7회담에서 이 문제를 정식 제기하고 쉘의 기업 활동 제재 가능성까지 밝혔다. 이처럼 쉘 불매운동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됐고, 각국의 쉘 주유소 입구마다 환경 운동가들이 유인물을 돌리며 고객들을 다른 주유소로 보냈다. 그 결과 유럽 전역에서 쉘의 매출은 30%까지 떨어졌다.
쉘은 그린피스의 주장을 반박하며 ‘해양 폐기가 오히려 환경에 안전하다’는 연구결과와 함께 “원유채굴 원가 상승은 곧 유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마침내 쉘은 바다에 폐기하려던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로 쉘은 약 4억5천만 달러의 추가 비용을 부담했으며, 향후 모든 해상 원유채굴 시설에 대해 상상을 초월하는 추가 폐기 비용이 발생하게 됐다.
나이지리아 오고니 사태
1995년 11월, 나이지리아 군사정부는 오고니 지역의 인권운동가 켄 사로 위와(Ken Saro-Wiwa)를 포함해 9명을 처형했다. 이 사태로 인해 각국 정부와 단체들은 나이지리아 군사 독재정부에 국제적 제재 조치를 잇달아 내렸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쉘에게 불똥이 튀었는데 시발점은 그린피스 홈페이지 때문이었다. 그린피스는 북해와 관련해 쉘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쉘을 부도덕한 기업으로 내몰았고, 나이지리아 오고니 지역의 환경 파괴 및 오고니 부족에 대한 정부군의 무자비한 주민 학살의 배후로 쉘을 지목했다.
사실 오고니 지역에서의 투쟁은 환경 투쟁이 아닌 부족 자결운동이며 더 나아가서는 독립 투쟁이었다. 그들이 주장한 쉘의 환경 파괴에 대한 보상은 하나의 수단이었지 목적 그 자체는 아니었다. 즉 나이지리아 경제의 근간인 석유개발이 오고니 지역에서 이뤄지면서도 혜택은 지배계급에게만 돌아가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군사 독재정부는 기득권 보호를 위해 강경 진압으로 일관했고 지도자와 동조자들을 사형시키고 말았다.
결국 그린피스는 오고니 문제의 핵심을 쉘의 환경오염 사태로 이끌었고, 쉘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나이지리아 군사정부를 뒤에서 조정해 오고니를 황폐화시키며 폭리를 취했다. 이후 쉘은 국제인권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국제 NGO 단체들의 표적이 됐고, 이미지 추락은 창사 이래 최악의 사태를 맞았다.
이 사건의 중심도 인터넷이었다. 그린피스 홈페이지에는 처형당한 작가 켄 사로 위와가 쓴 군사정부와 쉘에 대한 투쟁의 글이 실렸다. 그 글은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고, 사로 위와는 세계 환경단체 및 인권단체로부터 지지를 받는 아프리카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반면 쉘은 배후 조정 혐의로 씻기 어려운 오명을 얻었다.
8년 동안의 꾸준한 위기 극복 노력
1995년 최대 위기를 겪은 쉘은 현재까지 꾸준한 노력을 통해 이미지 쇄신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신뢰 회복의 일등공신, shell.com의 열린 게시판
쉘의 홈페이지 www.shell.com에 들어가면 어느 누구든 원하는 모든 말을 할 수 있도록 공개해 놓았다. 게시판에 올려진 글에 대해서는 절대 지우거나 수정하지 않고 어떠한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답변한다. 쉘은 자사 웹사이트 게시판에 각종 비방·모함·고소고발 사건 등에 대한 부정적 정보들을 진심으로 수용하면서 차츰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었다.
• 정치적 중립성과 환경 공헌을 바탕으로 한 위기관리 매뉴얼 원칙
쉘은 기업윤리에 바탕을 둔 전반적인 활동지침을 담은 위기관리 매뉴얼을 갖고 있다. 매뉴얼에는 일반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원칙이 규정돼 있다. 원칙의 첫 번째가 정치적 중립성이다. 1995년 나이지리아 오고니 사태가 정치적 루머에서 시작되었던 것을 교훈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첫 번째로 삼았다. 두 번째는 세계 환경에의 공헌이다. 즉 세계 시민의 건강·안전·환경 문제를 기업 활동의 최우선 과제로 간주하고, 이를 침해하지 않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지침을 규정했다.
• 세계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참여와 반부패 정책
쉘은 부패를 추방하고 세계 시민들에게 봉사하는 기업을 목표로 2020년 지구촌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쉘은 현재 반부패 정책을 표방하는 대표적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자체 감사팀에서 매년 뇌물에 관한 내부 감사보고서를 작성해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국제적인 반부패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유엔 및 국제투명성기구 등 국제 단체들의 활동도 적극 지원한다. 또한 나이지리아에 6천만 달러를 기부하고 30개의 병원을 설립했으며, 8만 명의 농민들에게 농업지원금을 대주고, 산업 발전을 위한 소규모 창업도 도와주고 있다. 이렇듯 쉘은 나이지리아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 국제사회에의 신속·정확한 정보 공개
2003년 3월, 쉘은 전격적으로 나이지리아에서 2주 동안 석유 수출을 하지 못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나이지리아에 내분이 일어나 회사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불가항력적인 사태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현지 전 직원을 본국으로 송환시켰다고 발표했다. 또한 쉘은 이 사건에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으며 유혈사태의 최대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이것은 과거 오고니 투쟁에서 주도권을 그린피스와 국제 인권단체들에게 빼앗겨 루머에 시달렸던 상황과 달리 먼저 주도권을 쥐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 선회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성공 사례다. 외신은 나이지리아 유혈사태를 보도하면서 부족 간의 석유 이권을 둘러싼 끊임없는 분쟁은 석유생산량을 저하시키는 세계 석유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어느 누구도 쉘이 연관돼 있다고 비판하지 않았다.
인터넷을 활용한 쉘의 <전략적 위기관리 지식창고>
쉘은 1995년 그린피스를 비롯한 국제 환경 및 인권 단체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은 이후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다. 노력의 기반이 되는 시스템이 바로 위기관리 정보시스템인 <전략적 위기관리 지식창고>다. 이 시스템을 통해 인터넷을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이 되었다.
쉘이 자랑하는 전략적 위기관리 지식창고는 탁월한 정보력을 지닐 수 있도록 해주었다. 즉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객 및 각종 이해관계자에 대해 정보 우위의 주도권을 지닐 수 있도록 했다. 시스템의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다.
• Online Monitoring System(Knowledge Broker): 인터넷에서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온라인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 Risk Management Manual & Dictionary(The Gloss): 상시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온라인 위험관리 매뉴얼로 세부적인 규정 및 통일된 위험관리 사전을 포함한다.
• Core Intelligence CEO Report(Executive Themes): 이미 규정된 최고의 정보만을 축약해 CEO에게 실시간으로 보고함으로써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 Organizational Report(CI News to Go): 핵심 이슈 및 필요 정보를 관련 직원들에게 신속히 알려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해주는 기능을 갖는다.
• Competitive Knowledge DB(Competitor Profiles): 경쟁자들에 대한 정보만 축약해 모아놓고 현재의 활동과 미래의 예상 활동을 규정한다.
• Labor Union & HR Information(HR Manager): 노조 관련 정보 및 쉘의 핵심 인력, 산업 전문가, 파트너 기업의 핵심 인물, 각종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정보를 관리한다.
• Competitor's Failure Case & Scenario Management(Yellow File): 경쟁자들의 실패 사례만을 모아놓고, 시나리오 경영기법을 통해 쉘이 동일한 상황에 처했을 때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기 위한 전략을 수립한다.
세계 최고의 악덕 기업에서 가장 멋진 기업으로 변신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 중 대표적인 위기관리 모델을 갖고 있는 쉘 사례는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쉘을 당혹하게 만든 것은 그린피스 등의 환경단체들이 펼치는 인터넷 캠페인의 위력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쉘이 세계 최고의 악덕 기업이라는 수치스런 오명을 벗어던질 수 있었던 것은 그 무엇보다 각고의 위기관리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기반에는 <위기관리 지식창고>를 통해 정보의 우월성을 갖고 신속한 위기 관련 정보 수집과 정확한 대처 능력이 있었다. 현재 쉘은 이미지가 상당히 회복됐고 글로벌 위기관리를 가장 잘하는 대표적 기업이 되었다. 두 가지 대형 사건의 실패 경험은 오히려 쉘이 세계 최강의 위기관리 노하우를 갖춘 기업이 되는 발판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쇄신 노력은 경영 실적과도 연관돼 현재 석유 메이저 중 최고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순이익도 급증하고 있다.
1995년 두 사건을 통해 쉘과 투쟁한 그린피스는 역사에 남을 가장 성공적인 스토리를 갖게 되었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보면 환경문제를 유발하는 악덕 기업에 대항한 환경단체의 승리처럼 보이겠지만 그 이면은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을 누가 잘 활용했느냐의 싸움이었다. 이것은 추후 대기업을 상대로 한 NGO 단체의 안티기업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모범 사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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